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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블록체인 송금 시대… ‘암호화폐 겨울’ 지날까

44 조경래 1393 2 0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중개 은행 없는 실시간 송금 시대가 다가왔다. IBM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IBM 블록체인 월드와이어(World Wire)는 국가 간 결제와 송금 속도를 높인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결제망이다.

IBM은 전 세계 47개 통화를 포함하면서 72개국에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에서는 부산은행이 가입을 결정했고 브라데스코은행·리잘상업은행 등 6개의 국제은행이 월드와이어상에 각자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국제기구가 할 일을 거대 기업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는 블록체인 때문이다. 월드와이어는 스텔라루멘에서 시작하지만 향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와도 연동할 예정이다. 인터넷이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듯이 IBM의 월드와이어(WW)가 지구촌 시민들이 사용하게 될 첫 블록체인일 수도 있다.

◆화폐는 이미 물리적 실체 없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몰고 온 혁신 위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페이먼트 전쟁이 진행 중이다. 애플·삼성·구글·알리바바·페이스북·트위터 등 내로라는 IT 기업들이 모두 각자의 무기를 들고 이 전쟁에 뛰어들었거나 뛰어들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중이다.

이 전쟁은 처음에 플라스틱 머니로 불리던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국경이 없으므로 결제 전쟁의 지향점은 국경을 초월할 수 있는 인터넷 화폐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이 주류 사회의 시야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기업들은 깨달았다. 비트코인과 같은 글로벌 장부를 활용하면 국가로부터 독점권을 보호받고 있는 금융 기업을 거치지 않고도 소액 결제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생각은 금융 기업들과 통화 주권을 신봉하는 정부 관료들까지도 적으로 돌리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들 기업들이 뛰어든 시장의 본질은 은행을 거치지 않는 국제 송금과 결제 서비스다. 

화폐는 무엇일까.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하지만 오늘날 전자화된 금융은 화폐의 본질이 변경하기 어렵게 만든 장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금과 같은 물리적 실체와 연결돼야만 화폐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자화된 시대에 자신이 사용하는 돈이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 한도 같은 숫자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만 인류는 이미 장부상의 코드일 뿐인 화폐에 익숙하다. 

화폐가 장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인지한 최초의 사람들은 복식부기를 창안했다고 알려진 이탈리아 은행 가문이라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금융업을 영위했던 이탈리아 은행들은 금을 이동시키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환어음을 개발했다. 

영국에서 금화로 걷은 헌금을 로마로 보내는 대신 환어음을 발행한다. 이탈리아 은행은 로마 교황청에 금화로 대납해야 하지만 환어음을 이용해 영국으로부터 모직물을 들여올 수 있었다. 금화는 국경을 넘지 않는 대신 환어음과 물품만 국경을 넘었다. 환어음이 복식부기로 발전했고 오늘날 국제 송금도 장부상의 변화만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인류가 돈을 발명한 그 순간부터 돈의 본질이 장부라는 사실을 집단지성 수준에서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화폐의 재료로 사용된 물질의 사용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개나 돌이 19세기까지도 화폐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재료의 가치는 화폐로 선택될 때 영향을 미쳤겠지만 일단 화폐로 쓰이기 시작하면 내구성과 희소성, 분할성과 대체성(표준화)만이 요구될 뿐이었다. 

이 속성들은 누군가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시간이 흘러도 장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하다.

블록체인의 사전적 명칭은 분산 장부다. 화폐가 장부라면 블록체인은 내구성과 희소성, 분할성과 표준화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이상적인 화폐다. 분산 장부는 이름 그래도 동일한 장부를 분산해 보관하기 때문에 중앙이 없다. 

따라서 블록체인이 세상에 나온 이상 이를 활용하면 국제기구나 금융회사의 도움 없이도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처음부터 명확했다. 신뢰를 위해 필요했던 수많은 시스템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인문학적 지식인들이 블록체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도 원리가 복잡해서라기보다 파괴적 속성이 지나치게 분명해서인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은 되고 비트코인은 안 된다?
IBM은 블록체인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월마트와 함께 농산물 유통을 블록체인으로 추적하거나 해운회사 머스크와 함께 전 세계 컨테이너의 움직임을 블록체인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등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과 관련해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은행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결제 시스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독자적으로 코인을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암호화폐의 혹독한 겨울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블록체인에 기반해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집단적 반발이나 정부들의 압력을 더 이상 신경 쓸 여유가 없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다. 

블록체인의 파괴적 속성을 이해했다면 맨 정신으로는 ‘블록체인은 되지만 코인은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고려해야 할 명제는 애초부터 하나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이 글로벌 장부에 접근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든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플랫폼을 주도하는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돋보기 - 케인스가 못 이룬 꿈의 국제통화 ‘방코(Bancor)’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협의 테이블에 영국 대표로 참여하면서 ‘방코(Bancor)’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방코는 정부들 간 외환 거래에 사용하는 국제 화폐다. 그런데 방코는 물리적 실체가 없다. 

각 국가의 대차대조표상에 수치로 존재하는 공통의 회계 단위였을 뿐이다. 표준화된 장부라는 개념을 활용해 새로운 금을 창안하고자 했던 셈이다. 

방코는 처음 금에 고정된 가치를 갖지만 나중에는 변경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각 국가의 화폐가 방코와 교환되는 비율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역 적자나 흑자가 교정되지 않고 누적되면 결국 국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방코라는 가상 금은 확장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이런 유연성을 위해 실제의 금이 아니라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방코가 금을 닮으면서도 금일 수 없었던 이유는 가치나 교환의 시금석이 돼야 하지만 국제경제가 이 시금석의 한계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충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케인스의 방코에는 화폐의 국가 간 이동을 통제하자는 발상이 깔려 있다. 방코는 각 국가의 중앙은행들만 취급할 수 있는 특별한 화폐였다. 

당시 케인스의 제안은 부분적으로만 반영됐고 금과 연계된 달러가 국제통화가 됐지만 방코 개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에 부분적으로 담겨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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